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이 오스왈트 (문단 편집) === [[휴스턴 애스트로스]] === 1996년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오스왈트를 자기들만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뒤로 남겨뒀고 결국 23라운드에서 오스왈트를 지명했다. 휴스턴에 입단한 오스왈트는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았으며 [[마이크 매덕스]][* 동생 [[그렉 매덕스]]에 비해 통산 커리어는 많이 뒤쳐지지만 지도자로서는 최고의 투수코치로 손꼽힌다. ]에게 여러가지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그 가능성을 높여갔다. 99년 시즌까지는 고질적인 어깨 통증으로 고생하였으나 시즌이 끝난 후 자기 집에서 트럭을 고치다가 감전, 그 이후로 어깨 통증이 없어져서 마이너를 정복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결과는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바로 효과가 나타나[* 이때 [[김재박]] 감독이 오스왈트를 탐낸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었다. ] '''대한민국'''을 누르며(...) 미국이 금메달을 차지하는데 일등 공신이 된다. 한국과의 두 경기 모두 [[정대현(1978)|정대현]]과 맞대결을 벌였는데 두 선수 모두 눈부신 호투를 펼치며 명품 투수전을 보여주었다. 이듬해 2001년 메이저에 콜업되어 141.2이닝 14승 3패 ERA 2.73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메이저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보통 이정도 성적이면 신인왕 수상이 당연시 되는 성적이었지만 같은 해 데뷔한 [[알버트 푸홀스]]가 MVP급 성적을 찍어버렸다. --하여튼 [[헌터 펜스]]도 그렇고 휴스턴은 신인왕 복이 없다.-- ] 2004년과 2005년 연속으로 20승을 달성하기도 하였고 2006년에는 2점대 ERA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04년 시즌 전에 휴스턴이 [[로저 클레멘스]]와 [[앤디 페티트]]라는 거물들을 영입했으나 개막전 선발로 오스왈트를 낙점할 정도였고, 05년에는 팀의 내셔널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확고부동한 에이스였다. 클레멘스가 후계자로 지목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오스왈트가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을 맹비난 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하여 네덜란드를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컨디션 난조로 4강전이었던 일본과의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WBC 이후 부상등 으로 후반에 시즌 아웃, 데뷔 시즌부터 이어져오던 연속 10승 기록도 8년에서 멈추고 만다. 그냥 2009 시즌 자체를 말아먹었다. 별명은 데뷔 시즌의 임팩트있는 활약과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생각나게 하는 투구폼으로 '''화이트 페드로'''라고 불리었지만[* 다만 물건너 웹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별명이다. ] 2003 시즌 부상으로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한 이후에는 투구폼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그리고 페드로처럼 빈약한 하드웨어 때문에 오래 못 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실제로 페드로처럼 30대 중반으로 넘어갈 때 쯤 하락세를 겪고 은퇴하였다. 휴스턴에서의 말년은 팀 자체가 몰락하면서 불운의 대명사로 떠올랐지만, 그 커리어 전체로 따지자면 휴스턴 타선의 빵빵한 도움을 받으며 20승을 두 번이나 기록하는 등 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꾸준히 A급 투수로써 군림해왔지만 한 시즌 리그 전체를 지배하는 장악력을 보이지 못했고,[* 한시즌 오스왈트와 비슷한 성적이나 그 이상의 성적을 찍은 선수를 뽑자면 리그에서 5~10명 정도는 뽑을 수 있다. ] 그렇다 보니 [[사이 영 상]] 등의 수상 실적은 명성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